때는 8월 어느날, 스크럼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출장을 가기로 한 내 사수가 육아휴직에 들어간다는 소식이.(그만 좀 징징대라고, 아니 근데 꽤나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사실 그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10월에는 장비 노후 교체로 인한 출장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이었고, 내 사수는 구주에 가기로 되어있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게 나 혼자 한국에 두고 다른 두 형이 줄줄이 출장을 가기로 했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여 이거 이렇게 된 거 막내도 보내보자!! 라는 마음으로 우리 리더 선배는 나의 출장을 추진하였고, 정신 차려보니 영국행 비행기에 올라있었다.
해당 건에 대해 리더 선배의 의중을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결론은 나지 않았다. 한번 여러분들도 맞춰보도록 하자.
- 우리 막내 조금 무리해서라도 해외 보내보자. 애 고생했는데.
- 너무 따뜻한 이야기지만 그럴리가 없다. 고생은 다 같이 했다.
- 언젠가 혼자라도 가야할텐데 일단 두명 보낼 수 있을 때 보내보자.
- 가장 유력하다. 실제로 선배는 대리급 부터 난데없이 장기 파견을 가 고생을 한 경험이 있다.
- 자신의 고통을 온전히 후배에게 넘겨주기 싫지 않았을까
- 이놈을 보내고 조기전력화 시켜서 미주-구주까지 한꺼번에 보내는 미친 마스터 플랜을 세워보자.
-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부장급들은 12시간이 넘는 비행에 대해서 비즈니스 클래스를 주는데, 우리 선배들은 입사보다 부장다는 날이 더 가깝다.
- 하지만 너무 잔인해서 이건 아니지 싶긴 하다.
뭐 어찌됐든 Oasis도 재결합 했겠다. 나는 락의 본고장인 영국으로 가는 것에 조금은 설레있었다.
사유는 설명 못해주지만 국제 경범죄자 선배들과 함께한 출장이 시작됐다.
1일차(KST `24.10.14 月 ~ GMT `24.10.14 MON)
- 바보 거북이와 인사를 하고 새벽같이 출발을 했다.
- 선배들은 모닝캄이라서 날 버리고 먼저 비행기에 올랐고 나는 10분동안 혼자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가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 비행시간이 6시간이 넘어가면 너무너무 힘들다. 다리는 붓고, 잠은 안오고... 14.5시간은 너무하다. 푸틴 미워.
- 영국은 영연방 국가 및 EU 국가를 포함해 몇몇 국가 여권 소지자에 한해 입국 심사를 면제해준다. 그 중에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왜지) 어쨌든 좋았다.
- 좋은 차를 빌렸고, 사실 이걸 내가 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외제차 처음 몰아봤다.
- 숙소가 너무 좋았다. 동네는 저녁이었으니까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모르고, 동네 마트에서 장 좀 보고 일단 잠에 들었던 것 같다.
2일차 (GMT `24.10.15 TUE)
- 이 날은 법인에 들어가는 날이 아니었다. 우리는 IDC에 중요한 일정이 있었고, 늦은 저녁까지 작업을 해야했다.
- IDC는 다행히 숙소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 그리고 이 날 피시앤 칩스를 사러 가며 내 선배는 국제 경범죄자가 되었다.
- 피시앤 칩스는... 얘들이 이거 때문에 대구 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너희 진짜 굶주렸구나.
- 작업은 순조롭게 끝났지만 오래걸렸다. 작업중에 일식집에서 커리 카츠를 시켰는데 한솥에서 시킨 것 같은 비주얼의 무언가가 도착했다. 충격이었다.
3일차 (GMT `24.15.16 WED)
- 궁금하던 구주 법인에 출근하는 날이 왔다.
- 구주 법인은 건물은 삐까번쩍 했으나 내부에선 데이터를 포함한 모든 전화가 통하지 않았다.(?)
- 법인 현지 과장님께서 커피도 사주시고 산책 코스인 교통 박물관도 데려가주셨다.
- 비스터 빌리지에 가서 쇼핑을 했다. 이번엔 좀 소소하게만 사자 라고 생각했고, 거금을 썼다.
- 얘들은 진짜 동양식 = 고수 라고 생각하나보다. 큰일났다 얘들.
4일차 (GMT `24.10.17 THU)
- 드디어 여유가 났다. 런던 시내를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 선배들은 퇴근 이후 날 데리고 런던 센트럴에 가서 주요 랜드마크를 모두 구경시켜줬다.
- 이만하면 다 봤다고 이제 내일부터 계속 경기도 같은 그 곳에서 일하면 된다고 하면서 다시 끌고 갔던건 비밀이다.
- 그래도 시내는 예쁘긴 했다.
- 이 때 알게된건데, 우리 숙소는 음... 서울로 치면 약 안양/양주 같은 곳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치안이 꽤나... 안 좋은 동네라는 것. 이민자들이 많고, 위험한 동네였다는 것이다.
5일차 (GMT `24.10.18 FRI)
- 정신 차려보니까 금요일이었다. 난 런던 구경 하루 한 것 같은데. 뭐지 싶었다.
- 그 날은 국제 경범죄자가 된 선배가 나에게 운전을 처음 맡긴 날이었다. 더이상 운전이 무섭다고 했다. 나도 무서운디.
- 구주 법인 근처에는 산책로가 참 예뻤고 벤츠 박물관도 있었다. 신기했다. 돈 좀 쓰면 막 밟을 수 있는 서킷 체험 코스도 있던데, 언젠가 돈이 썩어나면 해보고 싶다.
- 그룹장님도 마침 영국에 계셔서 출장 인력 + 현지 인력 회식을 진행하게 되었다. 맛은 있었지만 이 돈이면.. 이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식사 자리였다.(영국 애들 음식 진짜 못한다!!!)
- 숙소 돌아가기전에 대형마트에 갔는데, 출입문이 잠겨있어서 봤더니 강도 사건이 있었는지 사람 한명이 차에 머리박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땅바닥에 묶인상태로 땅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디게 무서웠다.
- 숙소에 돌아와서 2차까지 하고 잠들었다.
6일차 (GMT `24.10.19 SAT)
- PM의 아침이 밝았다. 원래 PM날은 국내 PM도 그렇고 아침부터 바지런히 돌아다니는 것이 국롤이다.
- 타워 브릿지를 참 궁금해 했었는데, 못 봐서 이번엔 꼭 봐야겠다고 혼자 돌아다니기로 했다.
- 별 거 없었다.
-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 구경을 하루종일 했다. 내셔널 갤러리 앞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있는데, 여긴 그냥 런던의 광화문이었다. 아주 화끈했다.
- 돌아오는 길에 열차를 잘못 타서 공항으로 갔다. 시간은 촉박하지, 핸드폰은 배터리 나가서 꺼졌지. 무서워 죽는줄 알았다.
- PM 중간에 저녁을 중국집에서 시켜서 옴팡지게 먹었다. 처음에 시키는거 보고 선배가 나보고 손이 너무 작다고 놀려서 잔뜩 시켰더니 반항이냐고 했다.(어느정도는 맞다.)
7일차 (GMT `24.10.20 SUN)
- 미주 출장 때는 PM이 끝나고 나서 완전히 잠들었었다. 그래서 일요일에는 놀지 못했다. 그래서 부서에 전해진 나는 잠이 많은 잠만보..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 그래서 이번에는 그러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어떻게든 꾸역 꾸역 일어나서 선배들이 옥스포드에 간대서 따라나섰다.(물론 내가 운전을 했다.)
- 가는 길에 있는 비스터 빌리지에 한번 더 들러서 동기들 줄 춰컬릿도 사고, 옥스포드에 갔다.
- 옥스포드는 참 예뻤다. 뭔가 오래된 중세 도시같은 느낌이랄까. 유럽에 온 느낌이 그제서야 났다.
- 그곳에서 그룹장님 일행을 만났다. 마지막 출장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사진을 왕창 왕창 찍으시는걸 구경했다.
- 숙소에 돌아와서 맛난 저녁을 함께했다. 바깥이 흉흉해서 많이 돌아다니기가 무서웠다. 왜 이런 곳에 숙소를 잡은걸까. 선배들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